THE MAID RUNNER ?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자고 일어나 눈을 떴을 뿐인데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소란스러웠다. 러너인 민호가 눈을 뜰 시간엔 아직 대부분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라 이런 소란스러움은 겪어본 적이 없어 제가 늦잠이라도 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아니라면. 옷감이 과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제 몸을 내려다보니 자기 전까지 입고 있던 셔츠와 바지가 아닌 것을 입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글레이드에 올라와 난생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옷이 왜 이 곳에, 그리고 민호에게 입혀져 있는것인지 알 수 없어 얼이 빠져있는 민호에게로 토마스가 다가왔다.


: 민호! 다들 옷이.. 푸하하하


느닷없이 터진 웃음소리에 글레이더들의 시선이 모이는게 느껴졌고 이내 웃음은 퍼져나갔다. 토마스의 말이 완성되진 못했으나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모두 이제까지 입고 있던, 그 익숙한 후줄근한 옷이 아닌 말쑥한 정장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민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글레이더 내에 거추장스러운 검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은 저 혼자였다. 알비는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허리를 숙여 웃고 있었고 몇몇은 바닥을 뒹굴기까지 했다. 놀림 받는 기분에 괜히 옆에서 실실 웃고있는 토마스의 배를 툭 치고는 민호는 일어섰다. 옷이 바뀐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민호가 러너인 이상 미로를 달려야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 똘추, 안 오고 뭐해!

AU


총탄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벤이 총에 맞았다.


: 민호.

: 벤. 젠장, 이건 아니야...

: 민호.

: 어떻게 너한테... 벤.

: 민호!

: ...

: 내 말 들어.


벤의 상처부위를 차마 만지지도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려내는 민호를 벤이 거칠게 부여잡았다. 민호는 말을 잃고 벤을 바라보았다. 마주한 눈빛이, 얼굴이 이제 마지막이겠구나. 하고 생각한 벤은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볼을 마주잡고 짧게 입을 맞췄다. 흔들리는 눈빛의 민호를 보며 벤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 민호, 부탁이 있어.

: .....

: 나를 버려.

: 벤, 뭐?

: 시간이 없어.

: 난 못해. 벤. 제발.

: 민호, 정신차려! 나를 버려야 네가 살아.

: ... 젠장.


상황에 대한 분노로 민호는 울분을 토했다. 그런 민호를 바라보던 벤은 멀리서 점점 다가오는 이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말 시간이 없었다. 입술을 씹었다.


민호, 이제부터 거짓말을 할 거야.


: 우리..

: 뭐?

: 내일 늘 만나던 그 곳에서 만나자.

: 그게 무슨..

: 그러니까 민호, 제발


벤은 소리가 들리는 반대쪽으로 민호를 밀어내며 말했다. 민호는 밀려나지 않으려 했지만 벤은 단호했다. 애원하듯 귓가를 울리는 벤의 목소리에 민호는 욕을 짓씹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벤을 한번 끌어안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뒤돌아 나가는 민호의 뒷모습을 향해 벤은 중얼거렸다. keep running, don't die.

토마스는 지금 고민에 빠져있었다. 제 눈앞에 있는 민호의 가슴팍을 주물대면 어떤 느낌일까? 연한 데님셔츠 아래에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소리치듯 서있는 유두를 보니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한참을 이야기를 하던 민호의 목소리가 갑자기 사라져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민호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싶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저를 바라보기에 토마스는 자신을 살폈다. 그제서야 토마스는 제가 저도 모르게 민호의 가슴에 손을 얹어 주물거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 이 똘추가!

: 억!


토마스는 이 순간 진심으로 자신의 순발력에게 감사했다. 급소를 피하는게 고작이라 허벅지를 차이긴 했지만 민호가 노린 곳을 맞았다면 자신은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리라고 생각하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허벅지라 해도 글레이더 중 가장 강하다는 러너, 그것도 치프러너에게 발로 채인 것은 고통스러웠다. 허벅지를 부여잡고 고개조차 들지 못할 만큼 아파서 토마스는 눈가에 눈물을 달고는 민호를 바라봤다. 그 울먹이는 눈빛에 민호는 순간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눈높이를 맞춰 토마스를 바라보던 민호가 입을 열었다.


: 많이 아프냐?

: 으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흐으..

: 아니 그러기에 누가..

: 으으..


결국 고인 눈물을 뚝하니 흘려내는 토마스를 보며 민호는 고개를 숙였다.


: 미안해, 토마스.


고통은 많이 가셔가고 있었지만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호가 잔뜩 풀이 죽은 채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자 토마스는 마음이 불편해져 장난스레 웃었다.


: 민호.

: ...

: 미안하면

: 뭐?

: 뽀뽀해줘

: 하?

: 뽀뽀해줘


딱 하고 민호가 토마스의 뒷통수를 쳤다.


: 어디서 수작이야

: 수작이 아니라 진ㅉ..


진짜 아프다고 투덜거리려던 토마스의 볼에 민호는 눈을 질끔 감고 입술을 가져다댔다. 자기가 요구하긴 했어도 민호가 정말 해줄거라고 생각도 못한 토마스는 입이 떡 벌어져 민호를 멍하니 바라봤고 그 모습이 퍽 우스워 민호는 픽하니 웃고는 뒷모습을 보이며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제서야 상황을 인지한 토마스는 화르륵 타오른 얼굴로 민호를 따라 달렸다.


: 민호! 같이 가!


허벅지 탓인지 어그적 거리며 달려가는 민호의 뒤를 따르는 토마스는 모르리라 민호의 얼굴 역시 붉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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